코로나 19 한국은 고통받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 우한 폐렴/ 코로나 19는 전세계가 풀어야 숙제를 안겨 줬다. 한국만은 무사희 지나가는 줄 알았으나 신천지 사건을 통해 한국도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관통해 가는 중이다. 오늘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 이야기에 주인공은 코로나 진단 키트를 만든 씨젠에 천종윤 대표다.
현제 그는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3주 만에 진단 키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1월 16일 코로나바이러스에 회사 역량을 모두 키트를 개발하는데 집중할 것을 지시했고, 그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에 코로나 확진자는 그리 많지 않아 아무도 그에게 키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적자도 각오하고 코로나 19 진단키트 개발에 성공했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23만 명이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인구율 대비 가장 많이 검사를 받은 나라가 되었다.
기존에 6시간 걸리던 감염여부 확인이 2시간이면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이 정확도도 99%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제 20개가 넘는 나라에 수출 중이다. 발 빠른 그의 대처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무론 씨젠만 코로나 진단키트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종윤 대표를 높이 사는 이유는 누구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진단키트를 찾는 시기인 만큼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1월에 6천 원대에 주식이 폭등해 2배 이상 오른 상황이다. 다른 주식 종목들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진단 키트 기업들에 주가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노력으로 씨젠 주주들은 환호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1주당 100원에 현금배당급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천종윤 대표는 1957년 경신시 용섬면에서 3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난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단 한 집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당시 결핵이라는 병에 걸려 4~5년을 심하게 알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애햐 했다. 이후 건국대 농학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미국 테네시대학교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등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8년 만인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0년 9월 바이오 벤처기업인 씨젠을 설립해 화사를 일궜다.
현제 30개가 넘는 나라에서 코로나진단키트를 받고자 요청이 쇠도 하고 있다. 필자는 씨젠 천종윤 대표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배움을 개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런 상황에 빛을 바랄 수 있었던 이유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나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다잡아 본다. 그리고 두 번째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키트를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적자를 각오하고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주가가 두배가 되었다. 하지만 현 사회는 어떠한가. 돈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남들이 좋다는 건 우르륵 따라다니지 않는가? 뭐가 좋다 하면 우르륵 그러니 한발 늦기 마련이다. 필자는 천종윤 대표를 통해 기회를 잡기 위해선 배움이 필요하고 큰 기회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도 업글인은 여려 분들을 응원합니다.
힘내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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