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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신동빈 신격호 회장 롯데 그룹 가계도

by 업글인 2020. 3. 27.

2019년 7월과 8월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격을 당했다. 말도 안되는 수출 규제안을 내놓았기때문이다. 그런일이 있고 한국에서는 NO제팬 운동이 일었다. 아직도 우리 주면에서는 노제펜 스티커가 붙은 자동차나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당시 롯데 대백화점이 일본기업이니 아니네 말이 많았다. 그래서 오늘은 롯데 일가에 대해 알아보겠다. 

 

 

롯데 기업은 국내에서 5손가락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롯대 회장직을 맞고 있는 인물은 신동빈 회장이다. 그렇다면 신동빈은 한국 사람일지 아닐지 그의 뿌리 부터 살펴 보겠다. 

 

 

위가계도를 보면 신동빈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수 있다. 신격호 회장은 1921년 경상남도 울산군에서 빈농인 신진수 의 5남5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후 1941년 부인 누순화와 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신영자를 비롯해 가족과 고향을 모두

뒤로 한 채 성공하겠다며 일본으로 밀항한다. 

 

 

일본으로 건너가 우유배달을 하며 밤에는 와세다 실업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그의 성실함을 보고 하나미츠 라는 사람이 5만엔을 빌려줘 밥솥만드는 고장을 차렸다. 그런데 미군비행기에 포격으로 공장이 날라갔다. 다시 하나미츠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하지만 1년 반 뒤에 다시 미군의 포격으로 망하고 만다. 

 

 

1945년 광복이 되었고, 하나미츠도 살길을 찾으라 위로를 하며 거액의 투자금을 포기한다. 신격호는 너무 힘들어 자실도 할까 고민했지만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고, 죽을 때죽더라고 빌린 돈은 값고 죽자는 심정으로 다시 돈을 빌려 사업을해 비누만드는 공장을 차려 1년 반만에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자신를 믿고 돈을 빌려준게 고마워 집한채를 사서 덤으로 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껌을 팔아서 1948년 현 롯데그룹의 모체인 (주)롯데를 세웠다. 창립 시기 일본 정부가 불량식품 단속을 위해 제정한 '식품위생법'은 오히려 롯데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어 주었는데, 단속 당시 롯데껌이 타 업체보다 상품력이 앞서서 공신력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1950년엔 신주쿠에 새 공장을 지었다. 1953년 일본 껌 시장점유율을 70%까지 올렸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당시 경제개발을 위해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서 제과 사업을 일으켜 성공한 신격호 회장에게 정부가 외자도입법에 따라 지원을 해줄테니 고국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신 회장은 모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했고 1967년 4월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그에게는 3명에 여자가 있었는데 첫째 부인은 1960년도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둘째부인은 인본에서 만난 사람으로 인본인이다. 셋째 부인은 미스롯데 출신으로 신격호 회장과는 37살차이가 난다. 신격호 회장은 99살까지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장수에 비련인가

 

 

아무튼 신격호 회장은 둘째 부인 시게미쓰 히스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 신동빈에게 2017년 6월 24일 아버지 신격호가 총괄회장직에서도 물러남에 따라 한일 롯데그룹의 최고 경영자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이중국적을 유지하다가, 1996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신동빈 회장에 부인은 다이세이 건설 부회장의 차녀인 일본인 여성 오고 마나미 여사와 결혼했다. 형 신동주는 재미교포 출신 한국인과 결혼했다. 

 

 

롯데 창업주는 분명 한국인이나 롯데에 성장배경은 일본이며 그의 둘째 부인 또한 일본인이다. 그의 아들이 국적은 한국인이나 일본에서 산 세월이 길고 그의 부인이 일본인이다. 그렇다면 롯데는 일본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오늘은 여기 까지 하겟다. 오늘도 업글인은 여러분을 응원합니다.